부산광역시가 최근 국내 최초로 국가청렴위원회의 권고사항을 반영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조례」(안) 입법예고안에서 주민이 제안하는 정비계획 제도규정을 삭제했다.

 

 

부산시는 주민과 업체 간 유착으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비리 등의 문제점을 예방하기 위해 주민이 정비계획을 제안하도록 규정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조례」(이하 ‘도시정비조례’) 제5조의 2를 삭제한다고 개정이유를 밝히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서울특별시에서도 이를 삭제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지만 직접 조례 개정입법예고(안)를 밝힌 것은 부산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처음부터 ‘도시정비법’ 어디에도 주민이 정비계획을 제안하라는 규정이 없었고, 또 이를 시도 조례로 위임하지도 않았다. 즉 정비계획의 입안의무는 당연히 시장·군수(자치구청장 포함)이며, 시·도시자는 이들의 구역지정 신청 등을 받으면 도시·건축공동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정비구역을 지정하는 지정권자이다.

 

 

도시정비법이 시행된 이후인 2003년 12월 30일 서울특별시는 도시정비조례를 제정하면서 정비구역지정입안에 관한 주민동의 조항을 만들었는데, 그 규정을 살펴보면 구청장이 주민요구에 의해 정비구역의 지정을 입안하고자 하는 경우 토지등소유자의 2/3이상의 동의를 얻도록 했다(도시정비조례 제6조제1항). 이 조항을 미루어 짐작해보면 원래는 구청장이 입안하도록 돼 있지만 주민들이 제안하는 경우에는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허나 실제론 서울시를 비롯한 대다수의 광역시, 도(道)에서는 정비계획 및 구역지정 입안권자인 시장·군수·자치구청장은 마치 주민제안에 의해서만 입안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고 주민제안제도를 그대로 택했다. 이렇듯 정비계획 및 구역지정 제도를 전국적으로 살펴보면 구청장이 먼저 입안한 경우는 없었으며, 주민들의 비용에 의한 제안이 대다수다.

 

 

이 제도의 폐해는 책임을 미루거나 회피한 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지자체의 위와 같은 태도는 먼저 정비구역지정 제안을 하는 구역이 사업 시행할 수 있었으며, 이를 위해 정비구역이 정해지기도 전에 추진위원회를 승인받으려는 과열현상이 나타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게 급조된 조직이 자신들의 조직인 추진위원회를 승인받으려면 주민의 과반수 동의를 구해야 했다. 이 동의는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의 역할이었으므로 그 비용부담을 이른바 협력업체(이를테면,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 또는 철거업체 등)들에게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또한, 정비계획 수립을 위한 지구단위계획 및 대략적인 건축설계 등과 관련, 엔지니어링회사 또는 건축사 선정비용이 소요되면서 이러한 비용들이 주민의 몫으로 돌아와 여러 가지 문제의 시발점이 됐다. 그러던 차에 필자는 국가청렴위원회 재개발·재건축 전문위원으로 있으면서 이 문제를 포함한 여러 가지 재건축·재개발문제들을 국가청렴위원회 제도1팀과 연구 토의했으며, 국가청렴위원회는 그 결과물들을 산출해 기관에 권고했다.

 

 

구청장이 정비계획 및 구역지정의 문제를 직접 입안하는 방식으로 해도 넘어야 할 산은 많다.

 

 

과열 재개발현상을 막기 위해 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이하 ‘정비기본계획’)에 부합된 전체적인 정비계획 및 구역지정에 대한 선결요건으로 그 비용조달의 문제이다. 현재 도시정비법 제82조에서는 정비기본계획을 수립하는 특별·광역시장 또는 시장은 도시·주거환경정비기금(이하 ‘정비기금’)을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을 일부 개정해 정비계획 수립을 위한 비용의 경우에도 시장·군수·자치구청장이 정비기금을 설치하고 이를 사용할 수 있는 규정을 신설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이 기금이 없어 조례 개정을 미루는 기타 시도의 경우도 합류해야 할 것이다.

 

 

정비계획 및 구역지정 입안을 하는 행정청은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기준을 세워서 이를 집행해야 할 것이다. 작위적이고 무계획적인 행정이야 말로 개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개략적인 건축계획을 수립하는 건축사,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하는 엔지니어링회사 및 주민동의서를 걷는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에 대해 엄정한 순서나 기준에 의해 구청에서 선정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구청에서 선정하는 협력업체들에 대해서는 공무원 의제 규정을 둬 그 업무와 관련해서 금품을 수수하는 등의 비리를 저지르는 경우 공무원과 같은 수준의 처벌을 받게해 업무의 공정성을 담보토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