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7월 1일 시행을 앞둔 도시정비법에는 과거와 달리 시공자 선정시기를 규제했다.  그동안은 자유롭게 시공자를 선정할 수 있었으나, 이렇게 도시정비법이 시행되면서 최초로 재건축ㆍ재개발사업의 경우 사업시행인가 이후에나 시공자 선정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내용을 예고하자, 이를 피하기 위해 사업초기에 무더기로 시공자를 선정했다.

 

급기야 법 시행을 앞둔 2002년 8월 9일, 정부는 ‘주택시장 안정대책’을 발표하면서 ‘2002년 8월 9일 이전 토지등소유자 1/2 이상의 동의를 얻어 시공자로 선정한 재건축사업에 대해서만 새로운 법(현행 도시정비법)에 의해 선정된 것으로 본다'고 규제하기에 이르렀다.

 

서초ㆍ강남ㆍ송파ㆍ강동구의 10여개의 재건축 추진위는 국내 굴지의 건설회사를 시공자로 선정했다. 그러나 강남구의 경우 10여 년이 지난 지금에야 정비구역 지정을 위한 공람을 시작한 곳이 수두룩하며, 기존의 추진위가 소비한 수십억 원의 비용을 승계할 것인지 여부에 대해 주민간의 반목이 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최근 무더기 정비구역 지정을 보류했다.

 

그 후로도 시공자 선정시기는 ‘사업시행인가→조합설립인가→추진위원회→조합설립인가’로 바뀌면서 그때마다 시공자 선정으로 혼란스러웠다. 정부는 과열된 정비사업을 냉각시키는 방법으로 선정 시기를 조절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 관계자들은 공공관리제도의 본질이 마치 시공자 선정 시기인 것처럼 홍보하며, 2010년 7월 15일 조례를 개정해 ‘사업시행계획서를 반영한 설계도서를 작성해 입찰에 부쳐야 한다’며 사업시행인가 이후로 늦췄다.

 

요란스럽게 출발한 공공관리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시공자 선정시기의 위임 근거를 살펴보면 정비사업을 공공관리하는 구청장등의 업무를 ‘설계자ㆍ시공자 선정 방법 등에 대한 지원, 그 밖에 시도 조례로 정하는 사항’ 등으로 한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도시정비조례 제48조). 그러나 정작 선정 시기에 대해서는 도시정비법(제77조의4제2항)에서 위임받은 바 없다. 이렇게 조례에서 새로 정한 시공자 선정시기에 대해 도시정비법의 범위를 일탈했다는 법조계의 지적에 대해, 조합설립인가 이후에는 ‘사업시행인가 이후’도 포함된다며 강변(强辯)하고 있다.

 

국토부도 이에 부담을 느꼈는지 법제처에 “도시정비법 제77조의4제2항ㆍ제6항에 따라 공공관리되는 정비사업의 경우, 시도 조례를 통해 조합이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후에 시공자를 선정하게 할 수 있는가(법 제11조 등 관련)”라는 질의를 했다.

 

이에 대해 법제처는 “법 제77조의4제1항에 따라 공공관리되는 정비사업의 경우, 시도 조례에서 조합이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후에 시공자를 선정하도록 할 수는 없다”는 내용의 답변을 내놓았다.  

 

그 이유로 도시정비법(이하 법) 제11조제1항의 개정 연혁을 살펴보면, 그 개정취지는 위의 연혁과 같이 시공자 선정을 사업시행인가 전에 하려는 의도가 명백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따라서, 법 제11조제1항에서는 조합설립인가를 받으면 시공자를 선정할 수 있는데, 조례에서 위임 규정이 없음에도 사업시행인가 이후로 규제하는 것은 법률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또한, “지방자치단체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그 사무에 관해 조례를 제정할 수 있다(지방자치법 제22조)”는 규정을 들면서, 지자체가 제정한 조례가 법령에 위배되는 경우에는 효력이 없으며, 위배여부는 법령과 조례의 각각의 규정 취지, 규정의 목적과 내용 및 효과 등을 비교해 둘 사이에 모순ㆍ저촉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서 개별적ㆍ구체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대법원 2009.10.15선고 2008추32판결)는 판례를 예시하며, 시ㆍ도가 법 제11조제1항을 위반해 사업시행인가 후에 시공자를 선정하도록 하는 내용의 조례를 제정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정비사업의 비리를 제거하려는 노력은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법률을 넘어서면서까지 시공자 선정 시기만 늦춘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더 이상 꼼수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점을 서울시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