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사건 이후, 최근 김길태 여중생 살해사건으로 재개발사업장의 이주에 따른 공가(空家) 관리가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제 철거공사는 시공회사의 도급공사에 포함되도록 법이 개정되면서 그 사정이 나아지겠지만, 대형 사건이 발생하면 늘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이었다.

 

 

용산참사 이후 서울시와 국토부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조문이 지난해 5월 27일 신설된 도시정비법 제48조제5항제2호의 신설이다. 이 규정은 재개발·도시환경정비사업에서의 세입자를 위한 규정으로 그 내용을 살펴보면, 재개발사업 또는 도시환경정비사업에서 종전재산 또는 권리를 평가 시에 ‘조합원의 종전 토지 또는 건축물의 가격산정 시 조합원이 둔 세입자로 인해 손실보상이 필요한 경우 조합의 정관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해당 조합원이 둔 세입자에 대한 손실보상액을 뺀 나머지 가격을 종전의 토지 또는 건축물의 가격으로 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세입자로 인해 손실보상이 필요한 경우’란 ‘세입자로 인한 주거이전비 지급’ 문제이다. 즉 조합원의 종전 토지 또는 건축물의 가격산정 시 조합정관이 정하는 바에 따라 주택이나 상가(이하 주택등)를 소유한 조합원에 대해 세입자에 대한 주거이전비를 뺀 나머지 가액을 종전의 토지 또는 건축물의 가격으로 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합원의 종전 토지 또는 건축물의 가격은 ‘권리가액’으로, 서울시 도시정비조례에서는 이를 ‘관리처분 계획기준일 현재 제27조제3항에 따라 산정된 종전 토지등의 총가액’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렇게 산정된 권리가액은 신축된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는 지표로서, 이 지표가 높으면 넓은 평형의 아파트를 공급받을 수 있는데, 세입자가 있는 조합원에게는 권리가액에서 세입자 주거이전비를 감액하는 등의 방법으로 지표를 낮춤으로써 불이익을 주는 제도를 신설한 것이다.

 

 

이 제도의 신설 취지는 무엇일까. 세입자를 둔 조합원에게 불이익을 주겠다는 것이라면, 조합원들이 관리처분단계에 이르면 오히려 이를 회피하기 위해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어 그 피해자는 세입자가 될 확률이 전보다 높게 된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세입자가 없는 조합원의 경우에는 그만큼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만은 않고 혼란만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왜냐하면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조합정관을 개정해야 하는데, 법에서는 정관개정을 위한 최소한도의 동의율조차 규정하지 않아 조합 내부에서 분쟁이 발생하며, 일선 구청에서는 혼란에 빠지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조합이 정관을 변경하려면 총회를 개최해야 하며 조합원 과반수나 2/3 이상(조합원의 자격에 관한 사항, 조합원의 제명·탈퇴 및 교체에 관한 사항, 정비사업 예정구역의 위치 및 면적, 조합의 비용부담 및 조합의 회계, 공사비 등 정비사업에 소요되는 비용의 부담시기 및 절차, 시공자·설계자의 선정 및 계약서에 포함될 내용의 경우)의 동의를 얻어 자치구청장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법 제20조제3항).

 

 

세입자를 둔 조합원들에게 불리한 정관 조항을 변경, 통과시킬 수 있으려면 최소한도 세입자가 없는 조합원이 과반수가 돼야 하는데, 재개발·도시환경정비사업에서 이런 요건을 충족하는 현장이 얼마나 있겠는가. 이 조문을 신설하면서 이런 현황을 확인해 봤는지 궁금하다.

 

 

더구나 최근 서울시 일부 구청에서는 이런 경우를 ‘세입자로 인한 조합원의 비용분담에 관한 사항’으로 봐, 정관 개정 동의율은 조합원 2/3 이상으로 결정함에 따라 정관변경은 부결된 바 있다.

 

 

정비조합과 조합원간의 불화를 증폭시키며 세입자의 지위를 불안케 하는, 그러면서도 실현 불가능(?)한 법률의 개정을 한 자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이제라도 법 제48조(관리처분 단계)가 아닌, 손실보상 규정(법 제40조)으로 바로 잡아 실질적인 보상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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