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여성 지리학자인 발레리 줄레조가 쓴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프랑스에서는 복잡한 도시 문제 또는 도시 폭력의 상징이 되고 있는 대단지 아파트가 한국에서는 왜 그토록 급격하게 건설되어질 수 있었는지, 아파트를 향한 한국인들의 열광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를 외국인의 관점에서 차분히 정리해 놓은 책이다. 이 책 결론 부분에서 저자는 대단지 아파트의 형태는 그 자체로 사회 공간적 차별화를 낳지는 않지만 이러한 차별화를 더욱 고착화시키는 효과를 갖으며, 장기적으로 관리와 유지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필연적으로 그 비용을 더 증대시키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서울은 오래 지속될 수 없는 하루살이 도시가 돼 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외국인 저자의 시각을 100%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우리나라 공동주택의 미래와 정책에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 주는 것 역시 사실이다. 특히 저자가 강조하는 바와 같이 아파트의 유지관리상 문제점은 대다수 건축 전문가들도 동의하는 바이지만 대부분 아파트 단지들이 건축설비가 노후화되기 시작하는 준공 후 20년 이내의 시점에 바로 재건축 되는 것이 현실이어서 크게 사회문제화 되진 않고 있다. 그러나 주택보급율의 급격한 향상과 인구증가 속도의 감소는 현재 지어지고 있는 대부분 아파트들의 재건축 가능성을 현저히 떨어뜨리고 유지관리의 필요성을 더욱 증대시킬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이와 관련해 건축물의 생애주기비용(Life Cycle Cost)이라는 개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개념을 간단히 설명하면 LCC란 신축비용과 유지관리비용의 총합으로서 신축비용을 줄이게 되면 유지관리비용이 증가하고, 신축비용을 늘리게 되면 유지관리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건축주가 건축물을 직접 건설해 유지관리까지 담당한다면 건축주로서는 초기 사업자금 부담능력을 고려해 신축비용과 유지관리비용을 적절히 배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아파트가 분양 아파트이기 때문에 신축비용을 부담하는 자와 유지관리비용을 부담하는 자가 분리될 수밖에 없는데, 이 때문에 아파트를 건설하는 일반 건설업체들로서는 분양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신축비용의 절감에만 나서게 되고 이는 향후 입주자들의 유지관리비용 증가를 초래하게 된다. 다만, 여기에서 유념해야 할 사항은 유지관리비용의 증가로 인해 부담이 가중되는 입주자는 초기 아파트를 분양받은 자가 아니라 아파트가 노후화되기 시작하는 준공 후 10년 이상이 경과된 시점의 소유자라는 점이다. 따라서 아파트 건설업체나 초기 분양자 모두 신축비용의 절감을 통한 저렴한 분양가에만 관심을 가질 뿐 향후 대규모 수선비용이 발생할 가능성까지 고려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따라 주택법은 공동주택을 건설?공급하는 사업주체로 하여금 공동주택의 공용부분에 대한 장기수선계획을 수립해 이를 해당 공동주택의 관리주체에게 인계하도록 하고, 관리주체는 장기수선계획에 의해 공동주택의 주요시설의 교체 및 수선에 필요한 장기수선충당금을 해당 주택의 소유자로부터 징수해 적립하도록 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장기수선충당금 적립액이 너무 미미해 실효성이 거의 없는 상태이다.
따라서 향후 발생할 공동주택의 유지관리상 문제점을 적극 예방하기 위해서는 현재 지어지는 아파트들을 유지관리가 용이한 구조로 건설하는 것이 시급하다. 특히 현재 지어지고 있는 대부분의 벽식(아파트의 대부분 벽들이 구조체의 역할을 하여 철거?이전하기 곤란한 구조) 아파트를 리모델링이 용이한 라멘조(주요 하중을 기둥과 보가 받고 대부분의 벽들은 철거해도 건물의 안전과 무관한 비내력벽으로 건축하는 것) 아파트로 바꿀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 2005.11 건축법을 개정해 리모델링이 용이한 구조의 공동주택의 건축 시 용적률 및 높이제한 기준을 120/100의 범위 안에서 완화해 적용할 수 있도록 했지만(건축법 제5조의4) 아직 적극 활용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이를 적극 유도하기 위한 정책적 방안들이 모색돼야 하고 그 중에 하나로 공동주택 재건축 시 반드시 리모델링이 용이한 구조로 재건축하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 재건축 개발이익을 환수하기 위한 장치로서 소형주택 의무건설, 임대주택 의무건설, 재건축부담금 등 다양한 방안들이 존재하지만 필자로서는 가장 선행되고 실행돼야 하는 정책이 리모델링이 용이한 구조로의 재건축 의무화라고 생각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리모델링이 용이한 구조로의 재건축이야 말로 진정 다음 세대의 부담을 덜어주는 지속가능한 개발의 한 유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