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처분의 하자와 중대·명백설
요즈음 정비사업조합을 둘러싼 각종 소송들이 민사소송에서 행정소송으로 전환됨에 따라 조합설립인가처분 취소 또는 무효 소송 등이 대폭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어떠한 행정처분이 무효인 행위인지 취소할 수 있는 행위인지의 구분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무효인 행정행위는 외관상으로는 행정행위로서 존재하나 처음부터 전혀 법적 효과를 발생하지 않는 행위로서, 다른 행정청이나 법원은 물론이고 사인도 그 독자적 판단과 책임하에서 그 무효임을 단정할 수 있는 행위를 말하며, 취소할 수 있는 행정행위는 그 성립에 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유효한 행위로 통용되는 것으로서, 다른 국가기관 또는 국민은 그에 기속되고, 행정쟁송 또는 직권에 의해 취소됨으로써 비로소 그 효력을 상실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처럼 행정행위 하자의 효과로서 무효와 취소를 인정하는 경우 그 구별기준이 필요한데, 행정처분이 당연무효라고 하기 위해서는 처분에 위법사유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하자가 법규의 중요한 부분을 위반한 중대한 것으로서 객관적으로 명백한 것이어야 한다는 중대·명백설이 우리나라 통설이자 판례의 입장인바, 이와 관련된 최근 판례(대법원 2010.9.30. 선고 2010두9358 재개발정비사업조합설립추진위원회 설립승인무효확인 판결)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대법원은 “행정처분의 하자 중대·명백 여부를 판별함에 있어서는 법규의 목적, 의미, 기능 등을 목적론적으로 고찰함과 동시에 구체적 사안 자체의 특수성에 관해서도 합리적으로 고찰해야 하며, 행정청이 어느 법률관계나 사실관계에 대해 어느 법률의 규정을 적용해 행정처분을 할 경우에 그 법률관계나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그 법률의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는 법리가 명백히 밝혀져 그 해석에 다툼의 여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행정청이 위 규정을 적용해 처분을 한 때에는 그 하자가 중대하고도 명백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법률관계나 사실관계에 대해 그 법률의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는 법리가 명백히 밝혀지지 않아 그 해석에 다툼의 여지가 있는 때에는 행정관청이 이를 잘못 해석해 행정처분을 했더라도 이는 그 처분 요건사실을 오인한 것에 불과해 그 하자가 명백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고, 행정처분의 대상이 되지 않는 어떤 법률관계나 사실관계에 대해 이를 처분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오인할 만한 객관적인 사정이 있는 경우로서 그것이 처분대상이 되는지의 여부가 그 사실관계를 정확히 조사해야 비로소 밝혀질 수 있는 때에는 비록 이를 오인한 하자가 중대하다고 할지라도 외관상 명백하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한 후, ① 이 사건에 적용되는 도시정비법은 추진위원회의 구성에 관한 토지등소유자의 동의시기를 정비구역 지정 고시 이후로 제한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았던 점, ② 이 사건의 경우 정비기본계획에서 고시된 정비예정구역과 현재 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과정에 있는 정비구역 간에 별 차이가 없다는 점, ③ 광주광역시 도시정비조례에서 구청장이 주민요구에 의해 정비구역의 지정을 입안하고자 하는 때에는 토지등소유자 2/3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이 경우 추진위원회 구성에 동의한 토지등소유자도 정비구역 지정 입안에 동의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함으로써 정비구역 지정 전 추진위원회의 구성 및 승인을 예정해 추진위원회로 하여금 정비계획의 수립단계에서부터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점, ④ 건설교통부장관이 시달한 「정비사업조합설립추진위원회 업무처리기준」에 의하면 기본계획이 수립되어 있던 시는 당해 지역이 기본계획에 반영돼 있는 경우에는 정비구역 지정 전이라도 추진위원회 승인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던 점, ⑤ 도시정비법령이 토지등소유자로 하여금 추진위원회 승인신청 전에는 언제라도 동의를 철회하도록 보장하고 있는 점 등을 종합하면, 비록 이 사건 승인처분이 정비구역의 지정·고시 이전에 정비예정구역에 의해 확정된 토지등소유자의 과반수 동의를 얻어 구성된 추진위원회에 대하여 이뤄진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하자가 중대하거나 명백하다고 할 수 없다는 원심의 판단을 그대로 인정했다.
아울러 기본계획안의 공람·공고 또는 기본계획의 고시 이전에 받은 동의서도 정비예정구역을 사업구역으로 하는 조합설립추진위원회 구성에 대한 동의로서 효력이 있다는 원심의 판단도 정당하다고 판시함으로써 종전의 실무와 관행을 적극적으로 용인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사실 행정행위 하자를 취소사유와 무효사유로 구분하고, 행정행위의 하자가 중대·명백하여 무효로 인정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권한 있는 기관에 의해 취소되기까지 유효한 것으로 보는 공정력을 인정하는 것은 행정의 실효성 확보 및 법적 안정성을 위한 것인바, 정비사업과 같이 다수의 행정처분이 수년의 시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이뤄지는 경우 선행행정처분을 무효화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게 판단돼야 한다.
특히 도시정비법상 법리해석에 많은 다툼이 있어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한데, 이런 점에서 중대·명백설의 합리적 적용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